[기사]청각장애인의 귀가 되어주는 사람들 ‘자막방송 속기사’
2019. 04. 23(화)
장애인의 달을 맞아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방송’에 관한 취재를 진행했다. 자막방송에 대한 이해와 청각장애인의 시청권을 보장하기 위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한편, 장애인들의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해 묵묵히 자기의 자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보자.
<차미경 기자><도움=소리자바자막방송센터>
기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방송 취재를 준비하며, 몇몇 프로그램을 ‘자막설정’을 한 채로 시청해 보았다.
탐사 프로그램과 일반예능 프로그램을 ‘자막설정’을 한 후 시청을 하면서 처음에는 소리와 자막을 함께 틀어 놓고 시청했고,
또 한 번은 음소거를 한 상태에서 자막만으로 시청을 시도해 봤다.
자막의 속도가 출연자의 말과 화면이 넘어가는 속도보다 느리다보니 소리와 함께 틀어 놓았을 때는 오히려 방해가 되는 느낌이었다.
이미 화면은 넘어갔는데, 전 화면에 대한 정보가 브라운관에 자막으로 찍히니 이질감도 들었고 오히려 내용을 이해하는 데 힘든 감도 있었다.
그나마 소리를 제외하고 화면만 시청했을 때는 그 전보다 조금은 시청하기가 편했다. 하지만 예능을 볼 때 패널들은 박장대소를 하는 모습인데,
자막만으로는 그 만큼의 재미있음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이미 들리는 것에 대한 편리함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자는 마지막으로 자막 프로그램도 소리도 모두 미설정으로 한 채 화면만 봤을 때 그것을 절실히 느꼈다.
나 혼자만 바다 한 가운데 둥둥 떠 있는 무인도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기자가 느낀 것처럼 청각장애인들에게 ‘자막방송’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좁지만 유일한 ‘길’ 같은 존재일 것이다.
자막방송 의무화 7년
과거에 비해 속도 정확도↑
방송통신위원회는 시·청각 장애인의 방송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지난 2011년 7월 방송법을 개정하고 폐쇄자막, 한국수어, 화면해설 등을 이용한 방송(장애인방송)을
방송사업자의 의무로 명시했다. 이후 같은 해 12월 ‘장애인방송 편성 및 제공 등 장애인 방송접근권 보장에 관한 고시’를 제정, 그동안 방송사의 자율에 맡겨 둔
장애인 방송접근권 서비스를 2012년부터 구체화해서 설정하고 시행했다.
하지만 처음 방송자막이 시작되던 7년 전에는 오타와 오역, 너무 늦은 속도 때문에 비판적인 지적이 긍정적인 시선에 비해 훨씬 많았다.
‘소리자바자막방송센터’ 박건 팀장은 “과거에는 자막방송을 만드는 속기사의 인원도 부족했을 뿐 아니라 전문성도 지금에 비해 뒤처졌었고,
방송사로 자막을 송출하는 기술력도 부족했었기 때문에 지금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느껴질 정도로 자막의 질이 떨어졌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오탈자가 속출하는 것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었다. 증권소식과 주요뉴스, 노래가사 등 멘트가 빠르게 흘러가거나 내용에 전문적인 단어가 많이 사용될 때는
짧게는 몇 초, 길게는 1분 이상 자막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던 것이 불과 7년 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지금의 자막방송은 속도가 말하는 이와 차이가 있다고 해도 단어를 놓치거나 30초 이상 속도의 차이가 나는 일은 99%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정확성이 높다.
박건 팀장은 “현재는 점차 기술이 발전해 가면서 송출전문 프로그램으로 필요한 인력만으로 송출 시간을 단축시키고 최고의 정확도를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발전했다.
또한 자체 개발한 소리자바 알파라는 인공지능 음성인식 기술을 이용해 속기사와 협업해 정확도, 딜레이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최고의 자막 서비스를 송출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발전된 기술을 바탕으로 현재 소리자바자막센터는 KBS 1TV, KBS 2TV, MBC, 국회방송, GS 홈쇼핑, KTV 국민방송, MBC 스포츠 플러스, TV조선, KBS 지역방송 19개 채널, SBS 민영방송 9개 채널, MBC 지역방송 5개 등 40여 개의 채널을 실시간으로 송출하고 있으며 한국농아인협회에서 주관하는 행사 등 여러 가지 현장 속기 지원, KBS 저널리즘과 MBN 판도라 프리뷰 지원, CJ E&M 방송 자막 제작을 하고 있다. 또 정상회담이 있을 경우 실시간 동시통역 자막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2인1조로 자막 송출
24시간 움직이는 자막팀
소리자바자막센터의 자막 송출은 2인 1조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2명이 같은 방송을 듣고 A라는 사람이 윗부분을 치면 B라는 사람이 아랫부분을 치고
다시 A가 그 아랫부분을 치는 방식으로 마치 탁구를 치는 방식으로 자막을 입력하는 것이다. 혼자가 아닌 2인 1조로 작업을 하는 것은 사람의 말의 속도를 따라가다 보니
혹시라도 놓칠 수 있는 단어나 문장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한 방법이다.
지상파 방송의 경우 이른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24시간 진행되다 보니 자막센터의 하루는 일반 회사와는 다르게 흘러간다.
현재 172명의 속기사들이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 오후 3시부터 밤 11시까지, 밤 11시부터 오전 7시까지 교대근무를 하고 있다.
방송자막은 사실상 80% 이상이 실시간 송출되기 때문에 법원과 국회, 행사 등 보다 정확성과 순발력을 중요시한다.
박건 팀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재방송에 입히는 자막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실시간 자막송출을 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센터에서 근무하는 속기사들은 다들 항상 긴장하고 있다. 법원이나 국회 등의 속기는 행사가 끝난 후 후작업으로 교정을 할 수 있지만 이곳에서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곳에 근무하시는 모든 속기사들이 자신이 송출하는 자막이 청각장애인에게는 단순히 자막 이상의 역할을 하는 것을 알기에 소신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 비해 자막채널 다양성 부족
사전제작 환경 조성돼야
완성도 높은 자막 제공 가능
최근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는 전세계에 유료 가입자만 5,700만 명에 이르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유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다.
최근 배우 주지훈이 주연을 맡은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한국어 영상해설까지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자국의 국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글로까지 제공하는 데는 시청각장애인의 미디어 접근권 보장을 의무화한 미 연방시행령(CFR)에 따라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해당 시행령은 미국에 수출되는 타 국가의 제품에도 장애인방송 기능을 갖추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박건 팀장은 “미국 등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방송자막 환경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자막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용자의 범주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가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서비스만 제공한다면 선진국 등에서는 그 범주를 인지능력이 쇠퇴하는 노인, 영상의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어 하는 환자,
언어를 배우는 단계에 있는 외국인 등 비청각장애인에게도 포함시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정 채널에 국한된 자막 서비스가 아닌 좀 더 많은 범위의 방송에서
자막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의 경우 프로그램의 대부분이 사전제작시스템으로 만들어 지고 있고, 실제 법으로도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을 입힐 수 있는 시간을 별도로 보장하고 있다 보니 좀 더 정확하고 완성도 높은 자막을 장애인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 우리도 사전제작 방식의 방송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퀄리티 높은 자막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리자바방송자막센터 사무실은 조용한 가운데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로 가득하다. ‘탁탁탁’이라는 소리가 왠지 청각장애인과 세상을 이어주는 문을 노크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자막을 만드는 사람의 열정과 그것을 뒷받침해 줄 환경적 요인이 함께 한다면 지금보다 조금 더 장애인과 비장애인 함께 어울리는 세상이 가까워 질 것이라 믿는다.
“청각장애인의 ‘들을 권리’를 가장 중요시해요”
차정훈 속기사 / 소리자바자막방송센터
방송자막 속기 4년차인 차정훈 속기사는 아직도 처음 자막을 송출하던 날이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처음 맡았던 프로그램이 야구중계였는데,
사실 제가 야구에 대해 잘 모르거든요. 그렇다 보니 규칙은 물론이고 외국인 선수가 등장하면 가슴이 두근거렸던 기억이 나요.(웃음)
주변에 야구 좋아하는 사람에게 묻기도 하고 검색도 하면서 야구 전문가처럼 공부했던 것 같아요.”
방송 자막을 쓸 때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이 어떤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차정훈 속기사는 “가능한 있는 그대로를 적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능이나 다큐멘터리 등에서 비속어가 사용되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적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말했다. 듣고 옮기는 것이니 순화시킬 수도 있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했다.
“저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는데, 그것 역시 이미 들리는 사람의 생각일 뿐 청각장애인분들이 원하는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권리로도 그들이 받아들이는 정보를 임의로 수정하고 변화시킬 수는 없죠. 모든 시청자는 같은 정보를 듣고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의미 전달을 보다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 사투리 등은 표준어로 바꾸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 역시 최소한으로 하려고 노력해요.”
마지막으로 자막방송 일을 하다 보니 외국의 사례에도 관심이 많아져 찾아본다는 차정훈 속기사는 외국의 안정된 방송자막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나라도 좀 더 자막방송 환경이 발전되길 희망한다고 이야기했다.
“예능이나 드라마는 2명 이상의 사람들이 나와서 말을 하게 되는데,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표시를 ‘하이픈(-)’을 앞에 붙여 주는 방식으로 해요. 우리나라의 경우는 노란색과 하얀색 두 가지 색만 사용하는데, 외국의 경우는 다양한 색깔을 사용하더라고요. 화면에 나오는 사람 개개인에게 색을 지정해주는 거죠. 그렇게 되면 누가 어떤 말을 하는지 어떤 상황인지 훨씬 생동감 있게 느껴질 수 있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면 우리도 저런 것은 도입해서 좀 더 장애인들에게 양질의 자막을 제공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죠. 그래도 과거에 비해 전문 자막방송 속기사들도 많이 늘었고, 방송국에서도 자막방송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있어요. 이렇게라면 빠른 시일 내에 장애인분들에게 좀 더 양질의 자막방송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어요.”
속기 키보드란?
속기사들이 사용하는 키보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키보드와는 다르다. 빠르게 타이핑을 해야 하는 속기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일반키보드의 2벌식 구조와는 달리 3벌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3벌식은 자음과 모음을 따로 입력하는 일반키보드와 달리 한 번에 완성된 한 글자를 입력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약어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처럼 약 열다섯 글자로 구성된 한 문장을 단 두 번의 타이핑만으로도 입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약어기능’이다.
이처럼 속기 키보드는 정확하고 빠르게 글자를 입력하는 속기사들에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다.
원문보기 : http://www.imedialife.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456
2019-04-23